갑자기 존나 우울해졌다.
1 애매한 소속감
어쨌든 저 사람들은 저기에 있다. 화면 안에 있고, 그들의 공간에 있다. 실제로 한 번도 못 만난 사람도 저기에는 있고, 한 번만 만난 사람, 두 번 만난 사람, 내댓 번 만난 사람도 저기에 있다. 그들과의 교류는 철저하게 화면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말을 주고받고 표정을 확인하지만 눈빛은 흐릿하게 보여 그 안을 파악할 수는 없다. 소통이 이루어지지만 공허함은 배가 된다. 표정은 웃고 있지만 가족들 눈치를 보느라 소리는 내지 못한다. 나를 어디까지 드러내야 할 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나는 화면 속의 저 사람들을 믿을 수 있을까, 저 사람들은 나를 믿을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떤 사이일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간다. 결국 내 자신이 문제였던 걸로 모든 것은 귀결된다. 그런 것 신경쓸 게 뭐 있어, 그냥 가볍게 큰 고민 없이 하면 되지, 라며. 이 주 전에 만났던 누나는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네 사고가 남들보다 유연한 편인 건, 모든 문제의 원인을 너 자신한테서 찾으려고 해서일지도 몰라. 다른 사람의 말에 주목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건 훌륭한 일이지만, 그 원인이 너이면 안 되는 거야, 자기 혐오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눈치는 없으면서 항상 눈치를 많이 보는 나는, 그냥 모든걸 내 탓으로 만들곤 한다. 그러면 편하다. 불필요한 갈등을 만드는 것보다는 나 혼자가 잠시 불편한 게 낫다. 좋지 않은 습관이라는 걸 알지만, 그게 나는 편하다. 문제는 나니까.
2 나도 여친
너무 외롭다.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자주 만나도 해소되지 않는 외로움이 있다. 친구에게서 얻을 수 있는 위로나 감정과 연애를 하며 얻을 수 있는 설렘과 행복은 확실히 다르니까. 사실 그럼에도 왠지 여자친구만 생기면 지금 내가 삶에서 느끼는 모든 권태감과 무료함 같은 것들이 사라질 것 같다. 친한 누나 한 명은 연애를 하면 포기하게 되는 것이 많다며, 그런 감정 낭비와 시간 낭비는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외롭다. 어쩌면 인간의 모든 동기는 성욕에서 비롯된다고 봤던 프로이트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3 나는 내가 싫다
나는 열심히 사는 사람은 아니라도, 분명 이 정도로 망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이보다 더 망가진 삶을 사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이제는 감정조차도 없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기분만 있을 뿐이다. 좋아하는 친구랑 이야기를 나눠도, 나가서 친구들을 만나 놀고 술을 마셔도, 집에서 가만히 누워 있어도, 영화를 봐도, 노래를 들어도, 뉴스 팟캐스트를 들어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감정이 없는 느낌이다. 무얼 위해서 살고 있는 건지, 이럴 거라면 왜 살아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고는 한다. 하루종일 화면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카카오톡을 계속 왔다갔다 한다. 무얼 보고 있는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르는 채로, 그냥 본다. 계속 본다. 그러다 잔다. 낮이던 밤이던 새벽이던 할 일이 남아있던 할 일이 없던 그냥 잔다. 침대를 버리는 건 어떨까 싶을 정도로, 최근 몇 달간 나의 생활은 거의 침대 위에서만 이루어진다. 정신을 좀 차리고 뭐라도 해 보려고 씻고 책상 앞에 앉아 보지만, 이미 굴리고 굴려 거대해진 눈덩이처럼 밀린 강의와 과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양이 되어 나를 짓누르고 있다. 이젠 내가 무엇을 해야 기분이 나아지는 지도 알 수가 없다. 공부도, 음악도, 영화도, 여행도, 게임도, 운동도, 진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는 못하는 것만 같다. 주말마다 다니는 아르바이트도 내게 활기를 복돋아주지 못한다. 그저 멍 때리다 학생들이랑 농담이나 하고 오는 나날들일 뿐인데, 내가 어째서 돈을 받아오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나 진짜 너무 힘들다. 힘든데, 왜 힘든지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힘듦이 해소될 수 있는 건지 모르겠고, 이게 힘든 게 맞는 지도 모르겠다. 권태감, 무료함, 그런 말들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떠한 것인것만 같다. 그럼에도 나는 이 상태가 오래 가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애정결핍 덩어리로 자란 사람인 나는 사소한 것에 감정이 휘둘리는 나약한 사람이니까. 언제든지 기분이 좋아지거나 더 나빠지거나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아니까. 그런데 중요한 건 지금이잖아? 밤에 혼자 맥주를 홀짝이는 일도 점점 잦아진다. 몸에 안 좋다는 걸 알아도, 중독인데 아닌 척, 사실은 그냥 멍 때릴 시간 좀 버는거다. 내 간은 쓸데없이 건강해서, 맥주 한 캔 먹는다고 취기가 올라오지는 않는다. 잠이 잘 오는 것도 아니다. 중독이다. 내가 이렇게나 나약한 사람이다. 담배도 쉽게 배우게 되면 어떡하지, 싶다. 세상 누구보다도 소심한 사람인 것 같다가도, 이런 얘기를 블로그에 올리는 걸 보니 나도 꽤나 관종 기질이 있구나, 싶다. 삶의 의미를 못 찾고 방황하고 있으면서도, 그냥 죽어버릴까 하다가도, 내가 자살을 택하기엔 너무나 겁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현실에 가만히 있는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까지 망가졌을까? 고작 20년 남짓 인생이지만 나도 용감하고 정의롭고 모범적이고 긍정적이던 때가 있었다. 돈만 축내며 누워있는 불효자 자식이 아니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망가졌을까. 한 달에도 몇 번씩이나 바닥과 천장을 오르내리는 내 기분은, 얼마 뒤면 다시 아무렇지 않게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지금을 힘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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