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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기록

중소기업 공장 알바 12일 후기

 힘들다.

 jonna 힘들다.

 

사무직, 관리직 직원들은 생산직 직원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청년 세대의 취업난이 심해지는 이 시대에 중소기업은 점점 더 심한 구인난을 겪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실, 그것이 정말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차이인지, 사무실 책상에 앉아 일하는 사람들과는 절대로 공감대를 만들 수 없는 생산직 직원들의 비애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내가 일한 곳은 우리 아빠가 다니는 회사다. 상무이사 직급을 달고 계신 아빠는 사장님 바로 다음 서열이라고 했다. 사실 상무이사와 사장 사이에 더 많은 직급 이름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중소기업이라 그런지, 내가 잘 모르는 건지 어쨌든 그렇다. 아빠가 그 정도 임원으로 있는 회사인데 아들이 그 회사 공장에서 생산직 알바를 한다? 좀 웃기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뭐, 돈은 벌고 싶은데 급하게 구할 일자리가 없으니 아빠의 제안으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

 나는 약간의 고집이 있는 편이고, 힘들다고 찡찡대는 것처럼 보이는 게 싫어서 왠만하면 힘든 내색을 안 하는 편이다. 첫 날 저녁에 아빠가 일은 어떻냐고 물어봤을 때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아마 부모님도 놀라시지 않았을까 싶다, 왠만한 걸로는 힘들다는 말을 안 하던 애가 힘들다고 해서. 며칠 뒤 아빠가 다시 물었다. 일은 좀 괜찮냐고. 이어 저번에 물었을 때는 첫날이라 적응이 덜 돼서 많이 힘들었을 수 있지만 이제는 아니지 않냐고 확신하듯 말했다. 오늘도 힘들었다고 했다. 아빠는 그런 거 가지고 힘들다고 하면 어쩌냐며 나를 다그쳤다.

 4층짜리 건물인 이 회사는 2층에 사무실이 있고 1층과 3층에 생산 공장이 있는 구조였다. 내 업무는 3층 포장실에서 화장품이 포장된 상자 24개를 담은 큰 상자에 상품 정보 라벨을 붙이고 지게차 팔레트 위로 한 층에 열두 상자씩 총 아홉 층을 쌓아올리는 일이었다. 일 자체가 힘들지는 않았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 잔업이 있는 날은 9시까지 계속 서 있어야 하는 게 힘들었다.

 

애니메이션 영화 <WALL-E>의 주인공 로봇이 지구에서 하던 일처럼, 나는 네모난 상자를 계속 쌓아 올렸다.

 

 1층에 배치되는 남자 직원은 주로 폐기물 수집 및 처리 업무를 했다. 있어 보이게 말해서 폐기물 수집/처리인 거지, 그냥 쓰레기 모아서 내다 버리는 일이다. 대형 카트에 쓰레기들을 모아서 회사 외부에 있는 폐기물 컨테이너에 담는 게 업무다. 일용직 노동자들은 그날그날 아침마다 각자 위치를 배정받는데, 쓰레기 담당으로 배정 받는 남자들은 힘든 일이라 도망을 가버린다고 했다. 내가 일했던 12일 중에서도 절반 정도는 원래 배정자가 도망가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고는 했던 것 같다.

 이 이야기를 아빠한테 했다.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이냐? 왜 다들 그리 도망을 가는거야. 너 쓰레기 버리는 데 가 봤지? 거기 지금은 컨베이어가 있어서 그 위에만 올려 두면 되잖아, 전에는 그게 없어서 다들 사다리 타고 올라간 다음 손으로 던져서 버리고 그랬어. 그게 왜 힘들다고 도망들을 가냐. 

 아, 이 사람들은 절대 이해 못 하겠구나, 했다. 직접 해본 적 없으면 모르는 거다. 제아무리 작업장에 CCTV가 있어서 화면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작업장에 직접 들어와서 관리감독을 해도, 직접 해본 게 아니면 모르는 거다.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편의만을 용기 내어 요구하지만, 관리자들의 시선에서는 일 하기 싫어 꾀를 부리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일용직 노동자의 비애가 느껴졌다.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문득 그 생각도 났다. 요즘 주부들은 세탁기도 있고 청소기도 있으면서 왜 그리 집안일을 힘들어 하냐는 말.

예전에는 방망이 두드려서 빨고, 불 때서 삶고, 쭈그려서 쓸고 닦고 다 했어. 이제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다 하지 않나? 요즘 여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中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기계에 불과하다, 여전히


 50년 전 전태일 열사는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라고 외치며 불타며 죽어갔다. 그 때에 비해 개선이 많이 이루어졌을 2020년의 공장도 이렇게 힘든데 1970년의 공장 일은 어땠을까 궁금하다. 노동자들이 바라는 건 많지 않다. 기업의 사무실 직원들에게 생산직 노동자들은 그냥 돈이자 숫자다. 그들을 고용하는 건 돈을 쓰는 일이기 때문에 같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일을 시켜서 효율을 높여야 한다. 최대한 많은 물건을 만들어서 돈을 많이 남겨야 한다.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속도를 높이면 생산량은 늘지만 그만큼 생산직 직원들에게 가해지는 신체적 부하는 늘어난다. 정해진 위치에서 같은 일만 계속 반복해야 하는 이들에게 생각할 틈은 없다. 생산량은 늘려야 하지만, 법적 근로 제한시간은 지켜져야 한다. 작업 속도는 빨라야 하고, 실수는 없어야 한다.

 

영화 <Modern Times>에서 찰리 채플린은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기계 속으로 들어가 기계의 일부가 되어 버린다.

 

 기업의 입장도 그들 나름대로 이해해줄 만은 하다. 부의 극대화라는 인간 욕망의 끝이 결국 기업 활동이니까, 이윤 창출과 부 축적에 목매는 것이 틀렸다고는 못 하겠다.

 이 회사에 노조가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없을 것 같다. 대부분이 일용직이라 회사와 직접 고용된 상태가 아니고, 출근 일정이 불규칙한 사람들도 많아서 노조가 결성되기 힘든 환경으로 보이긴 한다. 이들에게 대단한 것들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기계가 도는 속도에 맞춰 반복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건 달라질 수 없으니까. 50분 작업에 10분 휴식이 과한 휴식일까? 직원 한 명 당 의자 하나씩을 지급하여 앉아서 일할 수 있는 작업은 앉아서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과한 편의일까? 강압적인 작업장 분위기를 개선하고 상호 존중과 배려, 이해하는 문화를 만드는 게 힘든 일일까? 기업 차원에서 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좋겠다.

사람은 편해지고 싶어한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 있으면 눕고 싶고, 누워 있으면 자고 싶은 게 사람 심리다.

 이런 옛말은 이제 버릴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일하다가 자는 사람이 과연 있기는 할까? 각자 칸막이가 있는 사무실이면 모르겠지만, 공장에서는 절대 없을 거라고 본다. 솔직히, 누워서 일해도 된다. 각 작업실에는 조장님이 계시고, 조장님보다 윗사람인 작업반장님께서는 계속 돌아다니며 직원들을 감독한다. 관리자급 직원들도 왔다갔다 하며, 천장에는 CCTV가 달려 있다. 계속 감시받고 있는데, 누워 있다고 해서 일을 안하고 잘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2020년의 공장은 1820년의 공장에 비해 많은 것이 개선되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험악한 작업장 분위기


 공장에서 일했던 12일 중 11일은 3층에서 일했는데, 하루는 1층으로 배치받아 일을 했었다. 1층 포장실에 계신 작업반장님께서는 말투가 날카로웠다. 1분에 한 번씩 소리치고 윽박질렀다. 그렇게 하면 안되지, 제대로 좀 하라고. 이런 짜증 섞인 말들을 계속 내뱉었다. 계속 지적하고 혼냈지만, 해결책을 주지는 않았다. 그냥 못하면 일단 소리치고 보는 식이었다. 3층에서 했던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라고 주문받았기에, 나 역시 작업이 서툴렀다. 지게차 팔레트 위에 쌓인 박스들을 정렬해서 랩으로 둘둘 싸는 일이었다. 3층에서 일할 때 곁눈질로 몇 번 보기는 했지만, 어떻게 하는 지 배운 적은 없었다.

래핑을 시작할 때는 팔레트의 네 꼭지점 부분에 테이핑을 해 주어야 한다. 그 부분은 날카롭기 때문에 랩이 찢어지기 쉬워서 테이프로 덮어 주는 것이다. 래핑을 할 때는 박스들이 기울지 않고 가지런하게 서 있을 수 있도록 적당히 힘을 주어 감싸야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세게 조여서 박스가 찌그러지면 안되니 주의해야 한다. 테두리 래핑이 끝나면 윗부분도 랩으로 덮어 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바닥 부분에 테이프를 둘러 팔레트와 랩이 분리되지 않도록 고정해 주어야 한다.

 나는 위 과정 중 아무것도 배운 적 없고, 해본 적 없었다. 그냥 옆에서 래핑을 하고 있던 아저씨를 눈치껏 살피며 따라했다. 내가 영 못미더웠는지 반장님이 옆으로 와서 지켜보셨다. 그렇게 하면 안 되지, 라고 하셨다. 그럼 어떻게 하라고? 하지 말라는 것만 말하고 어떻게 하라는 말은 해주지 않았다. 나는 어설프게 작업을 계속했다. 아니, 그 쪽으로 하지 말고, 이리로 돌려. 나는 시키는 대로 최선을 다했다. 답답하셨는지 랩을 뺏어가 본인이 마무리하셨다. 다시 랩을 나에게 건네고 손짓을 했다. 이리로 돌리라는 건지, 저쪽으로 가라는 건지, 위쪽을 더 덮으라는 건지 알 수 없는 손짓이었다. 몇 초간 멍하니 있었다. 말을 해 줘야 알 것 아니야. 너무 화가 났다. 여기서 나는 일개 일용직 노동자일 뿐이기에, 아무 말도 못하고 반장님의 호통을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부터는 다시 3층에서 일했다. 3층 작업장 분위기는 다시 보니 선녀같았다. 반장님들은 소리지르거나 혼내지 않았고, 모르는 게 있으면 차분히 설명하며 알려주셨다. 잠시 한가할 때는 서로 농담도 주고받았다. 무거운 것을 옮길 때는 너나 할 것 없이 나서서 도왔고, 앞 사람이 너무 바빠 미처 다 못 접은 상자는 뒷 사람이 조용히 접어 마무리해주었다. 일을 대충 하는 게 아니었다. 결과는 같았지만, 과정이 달랐다. 과정에서 겪는 기분이 달랐다.

 

차별


 공장은 매우 인터네셔널...했다. 한국인, 한국계 중국인(조선족), 한국계 러시아인(고려인), 동남아 국가 출신자들 등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사람들이 함께 일했다. 1층 반장님은 특히 조선족 여성 직원분들에게 소리를 많이 지르셨다. 막말로 1층 반장님은 그들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안 보는 것 같았다. 한 마디 한 마디에 경멸과 무시가 묻어 있었다.

 내가 회사를 드나들며 본 관리직 이상의 사무직 직원들은 모두 남자였다. 제품을 무작위로 뽑아 품질을 확인하는 QC 담당 직원은 1층에 한 명, 3층에 한 명이 있었는데, 둘 다 여자였다. 꼼꼼하게 확인하려면 아무래도 세심한 여자가 하는게 낫지, 하는 윗사람들(대부분 아저씨들)의 생각이 반영되지 않았을까 싶다. 

 

후기


 직업에 귀천은 없다. 모든 노동은 힘들다. 그런데 공장 알바를 며칠 해 보니 왜 사람들이 몸 쓰는 일을 기피하고 사무실에 앉아서 하는 일을 선호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왜 사람들이 중소기업 취업을 기피하고 중견기업, 대기업과 공무원을 선호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몸이 힘들면 마음도 힘들다. 마음이 힘들면 몸도 힘들다. 몸과 마음은 하나다. 내가 다닌 회사는 몸과 마음이 모두 힘들었다. 몸이 아파서 마음이 힘들거나 마음이 아파서 몸이 힘든 게 아니었다. 일 하는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몸과 마음을 동시에 힘들게 했다.

 나는 2주 동안만 이 일을 했지만, 내 옆에 계시던 다른 노동자 분들은 어쩌면 몇 년, 몇십 년을 더 그곳에서 보내실 지도 모른다. 현실의 노동 환경은 아직 많이 열악하다. 일은 고되고, 쉴 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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