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 100선 목록을 보다가 의외의 책을 하나 발견했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책들만 가득할 거라고 생각했던 목록에,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이 있었다. 얼마 전에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는데, 찾아보기 귀찮아서 미루던 작품이라 눈이 갔던 것 같다. 공교롭게도 책을 구매하고 보니, 보건교사 안은영은 내가 인상 깊게 읽었던 책들이 속한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중 한 권이었다.
정세랑 작가는 책 맨 뒤에 있는 작가의 말에서 본인은 이 책을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다고 했다. 쾌감이란 무엇일까. 고등학교에서 보건 교사로 일하며 젤리같이 생긴 이상한 것들을 보는 것이 쾌감일까? 아니면 그런 이상한 것들을 귀여운 플라스틱 칼과 비비탄 총으로 마구 헤집는 것이 쾌감일까? 적어도 이 작품에서는, 쾌감은 그런 일차원적인 것들이 아니었던 것 같다. 작가가 소설에 대한 해석서를 따로 내어 두는 것은 아니니, 한낱 공대생에 불과한 내가 감히 짐작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기는 하다. 내가 느끼기로, 이 소설에서 작가가 이야기하고팠던, 이 책을 쓰고자 한 까닭이었던 쾌감은, 어쩌면 비행에 반쯤 발을 담글락말락 하고 있는 두 남고생을 바로잡고, 재단의 알 수 없는 비밀 속에 세워진 사립 학교의 비밀을 찾아 나가고, 이기심과 탐욕에 빠져 악(惡)을 팔아 넘기려는 누군가를 잡아내고, 하는 것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소설은 꽤나 귀엽지만 나름 진지하고, 그저 가벼운 소설인 척 하면서 은근한 의미들을 숨겨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귀신 같은 것을 보는 보건교사와 재단 비리에 가까운 과정으로 학교에 들어온 절름발이 한문교사 사이의 알 수 없는 흐름을 보면서 특히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 둘이 결혼을 한 건지, 동거만 하는 건지, 그냥 자주 같이 잠을 자기만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이상한 모습을 보여 주며 정말 이상하게 끝나는 소설인데, 괜히 이 커플 아닌 커플의 미래가 궁금하고, 나도 모르게 마음이 두근거리고 설레는 게 정말 묘하고 이상했다.
요즘 들어 인간과 예술의 관계를 생각해보는 일이 많다. 내가 하는 하찮은 생각과 미래에 대한 고민, 그리고 세상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램, 이런 것들조차 나의 주관이 담긴 예술일 지 모른다. 학업과 과제, 각종 모임과 인간관계에 치여 진짜 예술을 접한 지 무척 오래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와중이었는데, 급하게 마감 기간을 확인하고 부랴부랴 읽기 시작하려 펼친 짧은 소설책이 이토록 귀엽게 재미있을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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