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오후 3시에 공군 면접을 봤다. 원래는 경인병무청에 가서 면접관과 대면해 면접을 봐야 했겠지만, 병무청은 작년부터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모집병 면접에 대해 화상 면접을 실시한다.

징집 대상이 되는 20대 남성이라면 대부분 병무청 카카오톡 플러스친구가 추가되어 있을 것이다. 맨날 모집 홍보 메시지만 온다고 차단해 두면 안 된다. 모집병 지원 시 관련 안내가 전부 플러스친구 계정으로 오기 때문에...
1트 : 카투사
나는 성격 상 군대 문화와 단체 생활 같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고등학생 시절 3년을 내내 기숙사에서 보냈기 때문에 단체 생활에는 학을 뗐다. (적응 못 하고 낙오되는 수준이라는 이야기가 아님. 오히려 졸업 후에는 기억이 미화돼서인지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함.) 그런데 어떡하나. 신체 등급은 1급이고, 기타 면제 사항도 해당하지 않는데, 가야지 뭐.
그래서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편한 곳에서 군 생활을 하고자 이것저것 알아 봤다. 처음에는 카투사에 지원했다. 토익 점수는 780점 이상만 넘기면 됐다.(개인적으로 수능 영어에서 2등급 이상을 받았다면 큰 노력 없이 넘을 수 있는 점수라고 생각함. 본인은 기출문제집을 샀지만 대충 한두 회만 풀어보고 그냥 시험을 봤었는데, 토익은 그다지 어려운 시험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음.) 영어에는 자신이 있기도 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토익을 봐서 800점대 후반 점수를 얻어 둔 덕분에 지원 자격은 충분했다. 따로 면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출 서류도 토익 성적증명서 뿐이기에 그냥 별 생각 없이 지원했었다.

"주한미군 부대에서 미군과 거의 동일하게 생활하는 게 카투사인데 (Korean Augmentation To US Army) 당연히 영어 성적 순으로 뽑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나도 그랬다), 미군 측에서는 영어에 완전히 능통한 사람만을 뽑고 싶은 게 아니라 영어 실력이 중(중상)급 정도 되는 인력을 원한다고 한다. 해외 파병이 잦은 미군 특성상 말이 통하지 않는 지역에서 현지인들과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일이 많은데, 그런 상황에서 마주치는 현지인들이 모두 영어를 잘 하지는 않을 것이니, 보통 정도의 영어 실력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면을 가정하여 미리 자국 군인들을 대비시켜 놓고자 하는 의미에서란다.
그래서 카투사는 토익 780점만 넘기면 지원 가능하고, 별다른 추가 과정 없이 추첨으로 선발된다. 다만, 이조차도 영어 실력 단계(?)별 비중을 동일하게 하고자 전체 선발 인원을 토익 780~850점 구간인 지원자로 3분의 1, 851~920점 구간인 지원자로 3분의 1, 921~990점 구간인 지원자로 3분의 1을 채운다. 영어 실력 최상/상/중상인 지원자를 모두 균등하게 뽑고 싶어하는 것 같다.
사실 카투사 선발에는 논란이 많다. 미국은 우리나라의 최우선 우방국이긴 하지만, 치외법권지에 준하는 지위를 가진 곳에, 자국의 가장 중요한 정보가 있을 지도 모르는 군부대라는 시설에, 남의 나라 사람들을 들여 자국 군인과 사실상 똑같이 생활하게 한다는 건 보안(안보)에 있어서 꽤나 민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도 해당 인원 충원을 100퍼센트 추첨으로 한다는 게 조금 의아할 지도 모른다. 실제로 카투사 선발에 적잖은 비리가 있을 것이라는 논란은 꾸준히 있어 왔다. 별도 시험을 통해 선발하던 과거에도 역시. 인터넷에는 본인이 카투사 출신인데, 동기들 중 한두 명을 빼고는 죄다 정치인이나 대기업 임원의 혈육이었다는 증언이 꽤나 돌아다니고, 작년 상반기 내내 군 복무 중 휴가 남용으로 논란이 되었던 모 장관의 자제가 카투사 출신이었으니(정치색을 밝히는 것이 아님). 논란에 대한 입장은 자유이지만,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긴 하다.

2트 : 육군 기술행정병 (위성운용/정비)

조금 많이 화가 났었다. 지난 5회차 정도 커트라인을 봤을 때 안정적으로 합격할 수 있는 특기여서 지원했던 건데 불합격해서. 20년도 12회차 때 기존보다 10점 넘게 커트라인이 올라가서 1차 광탈 해버렸다. 같이 지원했던 친구는 2점 정도 차이로 합격해서 약간 (진짜 조금!! 약간!!!) 속상했다.
군대 가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스무 살 상반기까지만 해도 나는, 신체검사만 받아 두면 국방부가 알아서 나를 데려가는 줄 알았다. 수강신청 하듯, 티켓팅 하듯 병무청 사이트에서 광클을 하고 서류를 챙겨서 제출하고 필요하면 면접도 보고... 이런 노력이 필요한 일인 지 몰랐다. "이거 징병제 맞나?" 싶기도 했다. 의무적으로 가야 한다는 것 뿐이지 모든 지원 과정은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하니까. 싱가포르처럼 딱 생일 지나면 입대하고 이런 것보다는 낫지만, 불만이 전혀 없을 방식은 또 아니다.
3트 : 공군
아마 군대를 편하게 다녀오고 싶어했던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나와 비슷한 루트를 타지 않았을까 싶다.
카투사 지원 → 카투사 탈락 → 의경/공군 지원
나는 죽어도(사실 그정도까지는 아니고 ㅋㅋ 이번에 공군 떨어지면 육군 추가모집으로 빠르게 가려고 함)그냥 육군은 가기 싫었다. 조금이라도 더 자유롭게 시간 쓸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사실, 육군도 가 보고 공군도 가 본 사람은 없기 때문에 육군 출신이 말하는 것과 공군 출신이 말하는 것을 받아들일 때 적절히 걸러 들어야겠지만... 대체로 공군의 생활이 더 자유롭고 분위기가 그나마 인간적라고들 한다. 그리고 공군을 비롯한 모집병의 경우 일정한 선발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기 때문에, 인성 문제가 있는 사람이나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 등이 적절히 걸러져서 그들을 만날 확률이 적다고 한다. 그래서 공군을 지원했다. 육군보다 3개월 더 복무해야 한다는 점이 걸리긴 하지만(조금은 후회), 그 3개월을 의미있는 시간으로 채우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자격증 공부를 한다거나, e러닝으로 학점을 채워 둔다거나, 그냥 전공 공부를 조금 더 한다거나, 어쩌면 수능 공부를 다시 할지도...? (계획만 이래 놓고 막상 군대 가면 유튜브만 주구장창 보면서 뒹굴댈 것 같음)

화상 면접에서는 온-나라 PC 영상회의라는 웹사이트와 전용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면접 1주 전 쯤 미리 화상면접 장비(노트북 등)을 테스트하는 기간이 있어서 그 때 여유있게 스피커와 마이크, 웹캠을 테스트해 보면 된다.

면접 시간 30분 전에 위 사진과 같은 화면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근데 나는 40분 전쯤에 들어갔더니 들어가졌다. 그래서 계속 기다렸다... 한 시간 가까이 ㅋㅋ 근데 한 20분쯤 기다렸는데 슬슬 긴장해서 막 닭살돋고 춥고 똥마렵고 그랬다.
딱 들어가서 인사했는데 마이크가 꺼져 있어서 면접관님이 마이크 켜 달라고 하셨다... 온라인 면접이니까 본인 확인을 해야 한다며, 신분증을 보여달라 하셨고, 출신 중/고/대학교와 전공을 물으셨다. 이후 긴장한 탓인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면접이 어땠는지 대강 적어 보면...
1. 자기소개 해주세요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재학 중인 황승연이다 꼭 가야 하는 군대라면 허투루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서 자율적으로 시간을 관리할 수 있는 공군에 지원하게 됐다 ~ 등
2. 생활하면서 힘든 일을 극복한 적이 있냐 ("생활하면서" 라는 말을 쓰셨는데 뭔가 왠지 어색한 말처럼 들렸다)
저는 고등학생 때 3년 내내 학급 회계부장을 했다 돈을 걷어서 관리하고 어디에 썼는지 알리고 이런 일을 했는데 너무 힘들었고 친구들과 갈등이 많았는데 잘 해결했다 ~ 등
3. 생활하면서 힘든 일이 있으면 누구랑 얘기하냐
부모님이랑 얘기한다 특히 어머니랑 많이 얘기한다 본인 의견을 첨가하시기보다는 내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는 편이라서 ~ 이야기가 잘 통하는 친구나 선배들하고도 많이 이야기 나누는 편이다
4. 공군 오면 어떤 자기계발 할 거냐
전공 공부를 하고 싶다 지난 1년 성적이 만족스럽지 못해서 ~ 자격증 공부를 하거나 학점을 채울 수도 있을 듯 ~
5. 좌우명이 있냐
부모님이 항상 해 주시는 말씀인데 겸손하고 정직하게 살자는 것이 좌우명입니다
6.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냐
짧으면 18개월, 길면 21개월인 군생활 허투루 하고 싶지 않다 공군 꼭 가고 싶다 ~
뭐 이런 대화였다. 별로 오래 하지도 않았다. 6분, 7분 정도? 감정 없이 말씀하시는 감독관이셔서 딱히 합불의 시그널도 못 느꼈고... 그냥 훅 지나가 버렸다.
합격 기원
현재 합격하여 내일 입영 예정임 (2021.4.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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