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알바 후기 글에 친구가 남겨준 댓글을 통해 알게 된 영화다. (영화 소개해줘서 고마워!! 너가 추천해준 리스트들 꾸준히 다 볼게) 공장에서 일하고 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공감 가는 이야기가 많았고, 그래서 영화에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량 주는 것만 봐도 그래. 어디 아침이랑 저녁 때랑 컨디션이 같아? 그런데도 그 새끼들 계산 방식은, 숙련공이 한 시간에 뽑아낼 수 있는 최대치로 해서 주잖아. 걔들 눈에는, 우리가 인간인가? 기계지. 우리보다 싼 기계가 어딨어?
그들 눈에 생산직 노동자들은 기계다. 나도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속도에 맞춰 일하는, 생산 과정의 한 부분, 그저 기계 부품에 불과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반장도 그러고 싶어 그러겠니? 다 위에서 시키니까...
내가 일한 공장에도 작업반장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직급이 높은 관리직이 아니라, 직간접적으로 생산 노동에 함께 참여하는 사람이었다. 1층 포장실에서 뵀던 반장님의 불같은 호통도, 어쩌면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위에서 시키니까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 말단 생산 직원이 한 가지 실수를 하면, 그 윗 과정에서 수 가지의 문제가 생기고, 결국 관리자들에게 혼나는 건 반장 본인일테니까, 직원들을 더 호되게 다그칠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이해를 해 본다.
빼는 것도 좋지만요, 잔업을 200시간 돌파하고도 겨우 20만원 조금 넘는데, 그것마저 빼 버리면...
노동조합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노동자는 없다. 노조는 노동자들을 협력된 하나의 힘으로 만들어 주고, 회사측과의 협의를 통해 여러모로 노동자에게 유리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주체니까. 문제는 항상 돈과 현실이다. 무턱대고 노조 결성에 앞장섰다가 소위 '찍혀' 버리면, 회사 생활을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 당장 본인과 가족들이 먹고 살 돈이 없는데, 이 일이라도 해야 하는데, 괜히 찍혀서 잘리기라도 하면 어떡할 것인가? 큰 맘 먹고 파업을 하더라도, 당장 일을 멈추면 생계가 힘들어지는데, 적극적일 수 있을까? 국가가 법적으로 노동자를 보호하고 권리를 더 많이 부여해 줘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사실 수당은 아무 상관 없는 거야. 일이 많으면 사람을 더 고용해야 되는데, 그러려면 진짜 돈이 되는 본봉을 더 줘야 되니까, 그걸 아끼려고 잔업, 철야 시키는 거라구요.
회사는 생산직 노동자들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돈이자 숫자다. 그들을 고용하는 데에는 돈이 들기 때문에, 같은 시간 안에 최대의 효율을 내야 한다.
다만 돈을 아끼려고 기존 인원에게 잔업을 시킨다는 부분은 현재(2020년)와 다소 다른 것 같다. 초과근무, 즉 잔업을 하면 원래 급여의 1.5배를 지급하도록 법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사람을 한 명 더 고용해서 잔업을 하지 않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 돈을 아끼는 방법일 것 같기도 하다. (노동과 급여 관련하여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확실하게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공장에서 잔업을 몇 차례 했었다.
근데 형, 나도 학교 때려치고 돈이나 벌까? ... 이 짜식이, 학교 안 나오면 사람 대접이나 받는 줄 알아? 넌 임마, 무슨 일이 있어도 넥타이 매야 돼. 알았어?
정말 어이없지만, 내가 대학을 온 이유가 저거다. 아마 나 말고도 다른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대학을 온 이유는 저것 때문일 거다. 대학 안 나오면 사람 대접 못 받는 사회, 까지는 아니어도 여전히 대졸자와 고졸자를 공공연히 차별하는 사회가 우리 사회니까. 만 30년 전 영화이지만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와 본질이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그 시절에 문제였던 일이 지금도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고 화가 났다.
우리 여성 노동자들은, 하루 종일 일을 하고도 14만원 밖에 받지 못합니다. 또한, 사업주는 여자, 그것도 3, 40대를 퇴물이라 하며 저임금으로 혹사시키고 있습니다... (중략) ...또한, 우리 아줌마들 자체도, 주 수입원이 아닌 부업이라는 생각으로 그런 악조건을 별 반발 없이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구요.
여전히 우리나라는 성별간 임금 격차가 큰 편이다. 너무나 안타까웠다.
에, 저, 다음은, 사람 다치는 것보다 기계를 더 생각한다 이겁니다. 전에 춘섭이 형 손가락 잘렸을 땐, 치료비 던져주고, 근무 태도가 나빠서 그렇네, 이런 개소리를 하더니, 어제 기계부품이 망가졌을 땐 생난리 치는 것을 좀 보십시오. 도대체가 우리 노동자들을 너무나도 우습게 생각한다 이겁니다.
앞에서 언급했듯 회사는 생산직 노동자들을 사람으로 생각 않는다, 여전히. 내가 일했던 공장에서는, 그나마 걱정해 주는 척이라도 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재유행하고 있으니 만약 열이 나면 출근하지 말고 집에서 쉬라는 등의 얘기를 했었다. 기업은 이윤 창출보다 노동자의 작업 환경을 우선으로 고려해 주었으면 좋겠다. 노동자의 작업 중 실수로 금전적인 손해가 발생했다면 그것을 복구할 수 있을 만큼의 재원은 항상 확보해 두었으면 좋겠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노동자를 탓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들은 이미 충분한 무관심과 책임 전가를 겪으며 살고 있다.
요즘 노동조합 운동은, 마치 열병처럼 전국을 휩쓸고 있습니다. 저도 대학 다닐 땐, 전태일 열사 추모제에 참석할 만큼, 근로자 문제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마치 노동조합 운동이 여러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면은, 그것은 19세기의 사고방식이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미국에, 노동조합이 있습니까? 그들은 그들 스스로 노조를 거부했습니다. 참으로 미국 국민다운 현명한 판단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과격하고 무리한 싸움이 아니라, 바로 시간과 노력입니다. 여러분, 우린 이미 미국같은 선진국에서 그 예를 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를 주장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건 바로 공산주의자들의 목소리이며, 그들의 수단은 오로지 폭력입니다.
미국은 4대 프로스포츠 리그 각각에 선수노조가 결성되어 적극적으로 파업과 연봉협상 등을 진행한다. 우리나라는 2017년이 되어서야 프로축구리그에 선수노조가 생긴 게 전부다.
미국이 노동조합이 활발한 국가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마저도 못 미치는 상황에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형, 꼭 그렇게만 생각할 게 아니라, 형. 우린 자랄 때부터, 뭔가 불길한 얘기를 하는 놈은 다 빨갱이라고 배웠고, 또 빨갱이는 다 늑대처럼 생각했잖아요. 아니, 이때까지 우리의 주장이 옳다고 얘기해 놓고선, 그게 빨갱이라고 누군가가 얘기하니까, 갑자기 우리가 해오던 일이며 생각이, 전부 틀렸다고 말하고 있잖아요.
그래, 완익이는 대학생이야, 왜? 대학 졸업하고 공장 들어온 게 뭐가 나빠? 인간답게 살자는 게, 그게 빨갱이라는 거야? 완익이가, 그 좋은 학교 졸업하면, 좋은 데 취직해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텐데, 왜 여길 왔겠어?
제발. 이젠 식상하다는 말도 지겹다. 도대체 빨갱이가 뭐길래. 듣기 싫은 말을 하면 빨갱이라며, 공산주의자라며, 프레임 씌우고 몰아가는 행태는 대체 언제까지 이어질까.
게다가, 여자 노동자들을 자기네 장난감 쯤으로 생각하는 거야. 반말에다, 엉덩일 툭툭 치질 않나. 하긴, 그 동안 찍소리도 못한 우리가 병신이지.
직장 내 성추행 사건 역시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 은근하고 심해졌다.
남들 다 떠들어도, 넌 뒷줄에 빠져 있어. 그러다 잘리면 어디 다른 데도 못 간다구.
열심히 싸우고 싶은 마음을 가진 노동자들조차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당장 살아야 할 내일이 있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있어서다. 싸우다 잘못되면 자신과 가족의 생계가 통째로 날아가 버릴 수 있어서다.
글쎄, 내사 잘 모르겠다카이. 이놈 말 들으면 이게 맞고, 저놈 말 들으면 저게 맞고.
완익이나 원기가 하는 말, 하나도 틀린 게 없잖아. 우리도 사람답게 살자는 게 뭐가 불순한 사상인가?
그래서 생각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철저한 분석과 판단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우리 모두에게는 필요하다.
노조? 그 무슨 개 뼉다구 같은 소리야, 그게? 어떻게 하면 일 안하고 편하게 살까 하는 놈들이, 그저 노조, 노조. 왜 가난해? 허리띠 졸라매고, 더 절약하면 되지, 술 먹어, 담배 펴, 그래가지고 언제 돈을 모아?
어떻게 하면 일 안하고 편하게 살까 하는 놈들인 게 아니다. 단순히 돈 몇 푼 더 달라고 떼쓰는 게 노조가 아니다.
한수야, 우리가 가난한 건, 네가 학교에 못 간 건, 우리 것을 빼앗겼기 때문이야. 나도 반장 되면 최 반장처럼 안 될 줄 알아? 또, 그렇게 하면, 회사에서 가만 놔두겠니? 돈은 중요한 게 아냐, 중요한 건 바로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이지. 그러기 위해서는 단결해야 돼. 나도 옛날엔 너처럼 구사대였어, 아니, 아주 선봉에 섰었지. 그들이 빨갱이인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파업을 주도한 친구가 내 앞에서 울더군, 나보고 불쌍하고 안됐다고 하면서. 내가 불쌍해서 눈물이 난대, 한수야.
'우리 것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만을 몇백 년째 반복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들은 여전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까?
